
솔직히 저는 장애를 다룬 글을 읽을 때마다 묘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감동적인 극복 스토리 뒤에 가려진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최근 한 뇌병변 장애 당사자의 생애사를 읽으면서 그 불편함의 정체를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서사가 구조적 문제를 지우고, 성공담이 다른 장애인에게 부담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 사례를 통해 장애 서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회적 장벽은 무엇인지 분석해보겠습니다.
뇌병변 장애의 개인차와 극복 서사의 함정
뇌병변 장애(Cerebral Palsy)는 뇌 손상으로 인해 운동 기능과 자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총칭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뇌병변 장애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동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고, 어떤 사람은 보조기구로 단거리 보행이 가능하며, 또 다른 사람은 손의 미세 운동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한 당사자는 다리에 주로 영향을 받아 걷지는 못하지만 체중 지지가 가능해 휠체어에서 의자로 옮겨 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손의 힘이 약해 단추나 지퍼는 다룰 수 없었고, 글씨를 쓰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어 필체가 변한다고 했습니다. 경련(spasm) 역시 흔한 증상인데, 감정의 기복이나 피로가 쌓이면 몸이 떨리거나 경직되는 식입니다. 특히 흥분했을 때가 가장 심하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설명 뒤에는 항상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따라붙습니다. 이 당사자도 13세까지 워커를 사용하며 물리치료와 수중치료를 받았고, 다리를 깁스로 고정하는 교정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심지어 다리뼈를 부러뜨리고 힘줄을 늘린 뒤 다시 붙이는 수술까지 권유받았지만, 다행히 부작용 우려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느낀 문제는 이런 서사가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을 강화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본인의 노력과 가족의 지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왜 13세 소녀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디며 '정상'에 가까워지려 애써야 했는지, 사회는 왜 그 아이의 몸을 바꾸려 했지 환경을 바꾸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없습니다.
실제로 2023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자료에 따르면 중증 장애인의 고용률은 34.8%에 불과합니다 이는 장애인이 노력을 덜 해서가 아니라, 접근 가능한 일터와 이동 수단, 보조기기 지원 등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장애를 만드는 것은 손상된 신체만이 아니라 장벽이 가득한 환경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이 사례에서도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3세 때였습니다. 키가 크면서 중력의 영향을 받아 워커 사용이 어려워졌고, 수동 휠체어는 상체 근력이 약해 자가 조작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전동 휠체어를 "포기"가 아니라 "독립"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전동 휠체어를 '단계 하락'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인식 자체가 장애의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란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쉽게 말해, 계단만 있는 건물은 휠체어 사용자를 '장애인'으로 만들지만,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그 사람은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즉, 문제는 다리가 아니라 계단인 것입니다.
학교와 사회가 만드는 진짜 장벽
이 당사자는 초·중·고를 통합교육 환경에서 보냈습니다. 교실 보조 인력이 배치되어 이동을 돕고 필기를 대신해주었지만, 정작 교사들의 이해도는 낮았다고 합니다. 과제를 마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피로로 말을 아끼면 집중하지 않는다고 오해받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 선생님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GCSE(영국 중등교육 자격시험) 준비 시기 학부모 면담에서 교사들이 "이 학생은 쓸모없고 자격증을 하나도 못 딸 것 같으니 차라리 보육 직업 훈련이나 받으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장애인이 보육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자체도 편견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사들이 장애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할 의지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당사자는 GCSE 8개 과목을 통과했고, 대학까지 진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이 개인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라기보다는, 그만큼의 장벽을 뚫어야 했다는 증거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제 경험상 장애 학생이 통합교육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물리적 접근성이 아니라 교사와 또래의 '태도'입니다. 계단 하나 없는 학교라도, 교사가 "넌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시선을 보낸다면 그 학생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2024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일반학급 배치 비율은 72.4%로 높지만, 실제로 교사들이 장애 학생 지도를 위한 연수를 받은 비율은 40%대에 그친다고 합니다 이는 통합교육이 '물리적 통합'에 그치고 '교육적 통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또한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대학 진학 후의 변화입니다. 전문대학(college) 과정에서는 강의 녹음기 등 보조기기를 지원받았고, 담당 교수들이 이해심이 깊었으며, 학습 보조 인력도 하루 종일 붙어 있지 않아 오히려 독립성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후 대학(university)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졸업 직후 장애인 복지 단체 Livability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아 6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초·중·고에서는 안 되던 것이 대학에서는 가능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대학은 성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자율성과 책임을 전제하고, 장애 학생 지원 시스템도 상대적으로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초·중·고 교육 현장은 여전히 장애 학생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독립적 학습자'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직접 만난 한 통합학급 교사는 "장애 학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교사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교사 양성 과정과 재교육 시스템이 장애 학생 교육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육 당국은 통합교육을 확대한다고 하면서, 정작 교사들에게는 아무런 준비 없이 장애 학생을 맡기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당사자가 취업에 성공한 것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시험 끝난 다음 날 연락이 왔다는 것은, 그 단체가 이미 장애 당사자 채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인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일반 기업은 여전히 장애인 고용을 '의무'나 '부담'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고, 면접조차 볼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실제로 이 사례는 대학 졸업, 취업, 독립, 결혼, 출산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성공담'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2015년 파트너와 함께 집을 구입했고, 지방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스스로 휠체어 접근 가능한 신축 주택을 찾아 욕실과 계단 리프트를 설치했으며, 2017년에는 자연분만으로 딸을 출산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감동적이고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예외적 사례'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맺음말
영국 통계청(ONS)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의 주택 소유율은 비장애인보다 약 20%포인트 낮고, 장애 여성의 출산율 역시 평균보다 낮습니다. 이는 장애인 대부분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접근 가능한 주택이 부족하고, 임신·출산 과정에서 의료진의 편견에 부딪히며, 육아 지원 시스템이 장애 부모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당사자는 글 말미에 장애 아동 부모에게 "겁먹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연구를 통해 정보를 얻고, 아이를 과보호하지 말고, 작은 독립성이라도 키워주라고 말합니다. 이 조언 자체는 옳지만, 문제는 이런 메시지가 '부모와 아이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이 숨 쉴 수 있는데, 그 부분은 희미하게 처리되고 개인의 '극복'만 부각됩니다.
정리하면, 이 서사는 분명 한 개인의 용기와 성취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 장애를 둘러싼 구조적 차별과 제도적 공백을 개인 책임으로 치환할 수 있다
- 같은 성취를 이루지 못한 다른 장애인에게 '노력 부족'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
-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려는 정책적 노력보다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참고: Your stories > Living with cerebral palsy – Kayleigh's story (part two)